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부장판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에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조 판사의 영장 기각으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절차에는 되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헌재가 조의연 판사의 영장 기각으로 뇌물죄에 대한 심증 확보를 포기하면 탄핵 사유가 헌법위반 사항으로 압축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19일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성과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해 소명이 되지 않았다는 요지의 기각사유를 밝혔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 발부 사유인 도주나 증거인멸 보다는 범죄 혐의 소명에 무게를 두고 구속여부에 대한 판단을 한 셈이다.
조의연 판사의 이런 결정에 대한 찬반을 떠나, 조 판사의 영장 기각에 의해 이재용 부회장 뿐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는 최소한 아직은 규명되지 않은 것으로 잠정결론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헌재가 별도의 심리절차를 통해 박 대통령의 뇌물죄 성립 여부를 독자적으로 판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탄핵심판 자체가 범죄혐의를 가리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닐 뿐더러 뇌물죄 말고도 박 대통령에게 적용된 탄핵사유는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많아 탈인 탄핵사유를 조의연 판사 덕분에 조금 더 간추릴 수 있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뇌물관련 혐의를 포함한 법률위반 사항은 헌재가 정리한 기준으로 5가지 쟁점 중 하나일 뿐이다.
헌재가 정리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유는 크게 헌법위반 사항과 법률위반 사항 두가지로 나뉜다.
이 중 헌법위반 사항은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으로 인한 국민주권주의 및 법치주의 위반, 대통령 권한남용, 세월호 7시간 문제 등 국민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언론자유 침해 등 4가지다.
법률위반 사항은 뇌물, 직권남용 등에 관한 것이다.
탄핵사유의 중요도를 따지면 당연히 헌법위반 사항이 법률위반 사항보다 중하다.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 등 헌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곧바로 형사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통령이 이를 위반한 것이 입증되면 탄핵사유로는 얼마든 지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이다.
조의연 판사의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으로 법률위반 사항 중 가장 비중이 높은 뇌물죄 부분에 대해 헌재가 사실상 심리를 포기하면 초점은 헌법위반 사항에 맞춰질 수 밖에 없다.
헌재 입장에서는 품이 가장 많이 들어갈 뇌물죄 부분에 대한 부담을 줄인 셈이 됐고, 이에 따라 탄핵심판에는 한층 속도가 붙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의연 판사의 영장 기각 전까지만 해도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가 언제 종료될 수 있을 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의연 판사의 영장 기각 이후 부터는 헌재의 탄핵심판 심리가 2월 중순이나 말이면 결론이 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졌다.
박영수 특검의 활동시간은 2월28일까지 이지만 한차례 연장이 가능한데, 특검이 연장을 신청하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를 승인하며 3월 30일까지 활동기한을 늘일 수 있다.
헌재가 2월 중이나 또는 3월 중순까지만 탄핵심판을 종료하고 만약 박 대통령을 탄핵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특검은 박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까지 마무리하고 업무를 종료할 수 있는 셈이다.
조의연 판사의 영장기각과 관련없이 헌재는 탄핵심판 절차를 서두르는 분위기다.
헌재 재판부는 이번주에만 3번째 변론을 열었고 변호인이 입회해서 검찰 조사를 받은 관계자들의 진술조서는 모두 증거로 채택했다.
이에 따라 국회 소추위원단은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과 황창규 KT 회장 등 10명의 증인신청을 철회했다.
신문 대상 증인이 줄어든 만큼 탄핵절차는 빨라 질 수 있게 됐다.
강일원 주심 재판관은 19일 변론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을 향해 "형사재판에서 무죄 주장하듯 하지 말라"라는 주문도 했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들이 전날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수첩에 대한 증거 효력을 문제 삼는 등 지연 전략을 펴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
강 재판관은 탄핵심판의 경우 일반 형사재판처럼 유무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국정 운영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됐는지 여부가 중요할 뿐"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측의 시간끌기를 더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헌재의 의지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헌재 탄핵심판이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권성동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은 이날 jtbc 인터뷰에서 "헌재의 지금까지의 태도로 봐서는 굉장히 저희들 예상보다도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려는 의지가 보이고, 또 실제 그렇게 지금 진행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권 위원장은 "하나의 변수가 있다. 피청구인, 대통령 측 증인신청에 대해서 헌재에서 몇 명을 채택할 것이냐의 문제, 그다음에 그 증인들이 소환기일에 제대로 나와줄 것이냐의 문제에 따라서 조금 변동은 있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의 속도로 순조롭게 (증인들이) 나온다면 2월 말쯤에 선고가 되지 않을까 예상을 해본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조의연 판사의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은 이런 헌재의 분위기에 보조를 맞춰준 격이 됐다.
조 판사의 결정은 뇌물죄에 대한 헌재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발휘하며 궁극적으로 미증유의 국정농단 사태의 결론을 국민이 하루라도 빨라 볼 수 있게 한 셈이다.
한편 조의연 부장판사는 19일 새벽 4시50분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결정을 내렸다.
조의연 판사가 밝힌 기각사유는"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뇌물공여죄의 성립요건인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그래서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과 최순실 개인법인,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에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430억원을 뇌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조의연 판사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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