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태의 본질은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제왕적 대통령 세력과 황제급 재벌 세력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욕망의 바벨탑이 국정농단의 본질이다.
대한민국 권력실세 1위는 최순실, 2위는 정윤회, 3위가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평가에는 약간의 오류가 있다.
박 대통령 치하에서 권력서열 1위가 최순실인 것은 맞지만 2위는 정윤회가 아니라 이재용이었다. 어쩌면 1위가 이재용일 수도 있다.
삼성의 블랙머니가 없었다면 국정농단은 애초부터 벌어지지도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특검 수사로 대한민국이 얻어야 하는 것은 삼성이라는 황제 재벌과 제왕적 대통령 세력의 추악한 거래 실태를 드러내고 궁극적으로 근절책을 마련하는 것이 돼야한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는 이 역사적 대장정에 '합법성'이라는 외투를 입힐 수 있는 결정적인 위치에 있다.
조의연 부장판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박영수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 사법처리까지 일사천리로 달려나갈 가능성이 높다.
헌법재판소도 이에 보조를 맞출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국정농단' 수사는 크게 두갈래로 진행돼왔다.
하나는 '최순실-이재용-박근혜' 라인의 뇌물사건이고, 또 하나는 '박근혜-김기춘-조윤선' 라인의 블랙리스트 직권남용 사건이다.
두개의 수사축 중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최순실 이재용 박근혜' 뇌물사건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사실상 모든 것이 결정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조의연 부장판사에게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된 이유이기도 하다.
조의연 판사는 이르면 18일 밤, 늦으면 19일 오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조의연 판사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그 후 특검의 칼날은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가 유 무죄까지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상 구속영장은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있을 때 발부하는 것이 원칙이다. 원론대로 하면 유무죄 여부와 관계없이 구속영장은 발부 될 수도, 기각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려면 최소한 혐의 내용에 대해 설득력이 있는 소명이 이뤄져야 한다.
중범죄의 경우 범죄 혐의가 소명되면 그 자체로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법원의 대체적인 경향이다.
따라서 형사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발부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유죄의 심증을 굳히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경우 적용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가능한 것들이다.
혐의가 소명되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법원 관행은 물론 국민 법감정에도 부합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더구나 이재용 부회장 건을 맡은 조의연 부장판사는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로 근무를 시작한 이후 뇌물죄 등 중범죄에 대해서는 혐의가 인정되면 가차없이 영장을 발부한 편이었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영장실질심사 때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보다 혐의가 얼마나 증명됐는지, 방어권 보장이 필요한 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는 평이 나온 것도 조 판사의 이런 경향 때문에 나온 분석이다.
조의연 판사는 이재용 부회장 건 이전에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청구한 구속영장 9건 중 5건의 영장 실질심사를 맡았다.
이들 5건의 구속영장 중 조의연 판사는 1건만 기각하고 나머지 4명에 대한 영장은 모두 발부했다.
조의연 판사는 특검1호 구속영장 청구 사례였던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영장을 발부했다.
이어 조의연 판사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4명의 구속영장에 대한 실질심사도 수행했다.
조의연 부장판사는 이중 김상률 전 수석에 대한 구속영장만 기각하고 나머지 피의자들에 대해선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조의연 판사는 특검 발족 전 검찰 최순실 특별수사본부 단계에서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실 비서관,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적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외에도 조의연 부장판사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과 법조비리 사건, 대우조선해양 비리 사건에서는 주요 피의자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을 대부분 발부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로비 혐의로 긴급체포된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도 조의연 판사의 손에 의해 발부했다.
그동안 조의연 판사의 판단을 봤을 때는 '구속이 원칙, 예외적인 경우 불구속'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뇌물이나 횡령 등 중범죄의 경우 혐의가 소명되면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다고 보고 구속영장에 사인을 해온 게 조의연 판사의 스타일이었던 셈이다.
이런 조의연 판사의 영장 발부 원칙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사례가 지난해 롯데그룹 오너 일가 비리사건이다.
지난해 7월 검찰이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이 사건을 맡은 조의연 판사는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같은 롯데그룹 비리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신동빈 롯데그룹회장에 대해서는 "법리상 다툴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당시 조의연 부장판사는 “지금까지의 수사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느냐, 기각되느냐는 뇌물공여 등의 혐의에 대한 특검의 소명이 얼마나 확실하느냐에 달려있는 셈이다.
일단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범죄혐의는 사형만 빼고 모든 형이 가능할 만큼 중대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특검이 적용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이 부회장은 최고 무기징역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특검이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뇌물공여죄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가법) 상 횡령죄, 국회 위증죄 등이다.
이중 뇌물공여죄는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지만, 특경가법 상 횡령죄는 횡령금액이 50억원을 넘을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이상의 징역형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측에 건넨 돈이 삼성전자 등 회사 돈으로 밝혀진 만큼 뇌물공여가 인정되면 동시에 이 부회장에게는 횡령죄도 적용된다.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뇌물공여 금액을 총 430억원으로 명시했다.
이 중 삼성이 실제로 최순실측에 송금한 것으로 밝혀진 것만 코레스포츠 78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원 등 100억원에 가깝다.
이들 금액이 뇌물 또는 제3자 뇌물로 판정될 경우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될 횡령액수도 50억원이 넘는 만큼 특경가법상 가중처벌 대상에 해당된다.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또하나의 혐의인 국회 위증죄도 법정형이 1년이상 10년이하 징역으로 상당한 중범죄에 해당한다.
조의연 판사가 이재용 부회장을 중범죄 혐의자로 판단할 근거는 충분한 셈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된 뇌물공여와 횡령죄, 국회 위증죄의 혐의 내용이 소명됐다고 판단될 경우 조의연 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조의연 판사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할 경우 특검은 곧바로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화기록, 이른바 '보안손님' 들의 청와대 출입기록 등은 박 대통령 조사 전에 특검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자료이기 때문이다.
압수자료 분석이 끝나는대로 특검은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시도할 것이고, 이것으로 특검수사는 사실상 정리단계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2월초까지는 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조사를 할 방침임을 밝힌 상태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3월 중순까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마무리하고 인용결정을 한다면 특검은 박 대통령까지 사법처리할 수 있다.
헌재의 태도를 볼 때 박 대통령 탄핵절차는 이정미 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되는 3월13일 이전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박영수 특검의 활동시한은 일단 2월28일까지다. 하지만 대통령의 승인을 받으면 활동기한을 30일 연장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상태이기 때문에 특검의 활동시한 연장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결정하게 된다.
특검이 수사기간 연장을 신청하고 황교안 총리가 이를 승인하면 특검은 3월30일까지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결국 헌재가 3월13일 이전에 박 대통령을 탄핵하면 박 대통령은 그 순간 불소추특권을 상실하고 곧바로 특검에 의해 체포돼 사법처리될 수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정치적 기류도 급변할 가능성이 높다. 박사모를 비롯한 친박 세력이 특검과 촛불민심에 맞서 대대적인 역공을 펼치고 나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
조의연 부장판사의 손에 '최순실-이재용-박근혜' 공화국의 해체 여부는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고 판단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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