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시상식,헐리우드판 '촛불집회' 방불
27일 열린 아카데미시상식은 미국 판 '촛불집회'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반 트럼프 기류가 아카데미 시상식 내내 장내 분위기를 장악했다. 사회자 부터 노미네이트된 영화 관계자들까지 거의 한결같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을 규탄하고 보이콧하는 의사를 표현했다.
미국 LA 돌비극장에 열린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 진행을 맡은 코메디언 지미 키멜은 오프닝부터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지미 카멜은 "트럼프 때문에 국가가 분열됐다"며 "미국이 하나로 뭉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고 그걸 우리가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려 한다"며 "지난해 오스카상이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올해는 트럼프 덕분에 그 이야기가 사라졌다"고 재치있는 멘트와 웃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공격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중반 이후 지미 키멜은 "평소 트위터를 즐겨 이용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시상식 중 전혀 트위터 멘션을 적지 않았다"고 언급해 시상식장에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지미 카멜은 무대 위 스크린에 트럼프의 트위터 계정을 띄운 채 즉석에서 메시지를 보내려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행사에 참가한 몇몇 배우들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항의하는 의미를 담은 파란색 리본을 달고 나와 관심을 끌었다.
수상 내역 역시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이곤 했던 예전과는 달랐다. '문라이트'의 마허샬라 알리와 '펜스'의 비올라 데이비스, 두 남녀 흑인 배우가 나란히 조연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문라이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마허샬레 알리는 수상 이후 "훌륭한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게 기회를 주셔서 정말 기쁘다"라고 울먹였다.
'문라이트'는 이날 작품상도 수상했다. 이 와중에 작품상 수상작이 담긴 봉투가 뒤바뀌는 바람에 처음에는 '라라랜드'가 작품상이라고 발표됐다가, '라라랜드' 관계자들이 무대에서 수상작을 '문라이트'로 정정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은 "꿈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일이 일어났다. 정말 감사하다. 이 분들이 오랫동안 무대에 올라와 계셨는데 이렇게 돼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라랜드'도 이날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서 6개의 트로피를 가져갔다.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이나 남녀 주연상 만큼이나 외국어영화상에 쏠렸다.
이란 영화 '세일즈맨'의 외국어영화상 유력 후보였는데, 실제로 '세일즈맨'은 이 상을 수상했다.
'세일즈맨'을 연출한 이란 감독 아쉬가르 파르하디는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에 반발하며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리 수상자의 수상 소감이 마무리되던 순간엔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이란 출신 감독이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정책에 대해 불참으로 의사를 표시한 것을 향한 지지의 뜻을 보낸 것이다.
아쉬가르 파흐하디 감독은 대리 수상자를 통해 "제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면 우리 국민들께 실례가 되는 것 같아 미국 이민국의 결정에 따른 저희의 의견을 표시하는 기회로 삼겠다. 지금 전 세계를 우리와 적으로 나누는 그런 행동은 전쟁을 나타내는 행동이다. 우리 나라도 그동안 희생양이 됐기 때문에 이런 의견을 명시해야 한다 생각한다"며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차별 정책을 비판했다.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우리 사이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공감을 형성해야 한다"고 소감을 마무리했다.
파르하디 감독은 2012년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로써 파르하디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두번째 같은 상을 수상한 첫 이란인 감독이란 기록을 남기게 됐다.
분장상을 수상한 '수어사이드 스쿼드' 팀도 수상 후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다. 모든 이민자에게 이 상을 바친다"며 간접적으로 트럼프의 반이민정책을 꼬집었다.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투어 버스를 타고 온 관객들을 상대로 한 세러머니도 진행됐는데, 투어객 중 특히 흑인 부부가 눈에 띄었다.
결혼을 앞둔 이 흑인 부부는 니콜 키드먼, 옥타비아 스펜서, 메릴 스트립 등 쟁쟁한 배우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또 덴젤 워싱턴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으면서 즉석에서 그를 자신들의 결혼식에 초대해 유쾌한 웃음을 낳았다.
제니퍼 애니스톤은 이 흑인 예비 신부에게 즉석에서 결혼 선물로 선글라스를 건네기도 했다. 아카데미측과 배우들이 트럼프의 인종차별적인 정책에 항의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온 흑인 관객들을 부각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 블루 리본
러스 네가<사진= wwd>
이날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액세서리는 일부 스타들이 드레스와 턱시도 위에 꽂고 나온 블루 리본이었다.
영화 '러빙'으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러스 네가는 새빨간 발렌티노 레드 드레스에 새파란 리본을 달았다.
뮤지컬 '해밀턴'의 창작자이자 애니메이션 '모아나'로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린 마누엘 미란다와 그의 어머니 닥터 루즈 타운스 미란다도 나란히 블루 리본을 달고 등장했다.
모델 칼리 클로스 역시 스텔라 매카트니의 새하얀 이브닝 드레스에 리본으로 포인트를 줬다.
리본에는 'ACLU'라는 문구가 찍혀 있다. 이는 미국시민자유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의 약자다. 이 단체는 올해로 발족 97년이나 된 비영리 기관으로 미국 내 모든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수호하고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이 1월 반이민 행정명령에 승인한 뒤 2500만 달러의 기부금이 모일 정도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단체다.
배우 사라 폴슨은 아카데미 시상식 전에 열린 영화배우조합상 수상 소감에서도 "ACLU에 기부해달라"며 공개적 지지를 밝히기도 했다. 아카데미에서도 일부 배우들이 블루 리본 달기를 통해 반트럼프 정서를 강하게 드러낸 것이다.
#. 작품상 "라라랜드, 아니 문라이트"